“저기 저 사람 봐. 위칸 할아버지 팔에 있는 거랑 똑같은 모양이지?”
“혹시 숨겨진 자식?”
“근데 하나도 안 닮았는걸.”
눈앞에서 이방인을 두고 어린 아이 몇몇이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아이들과 신 사이의 거리는 겨우 1m 남짓. 들리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고 뱉는 말은 아닐 테다. 그렇다고 들으라는 의도가 보이지도 않았다. 단순히 아이들 특유의 호기심으로 떠드는 이야기였다.
그 당사자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순진함을 가까이서 접하고 있으니, 신은 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저 사람이 우리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믿음이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두앗은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상냥한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요 꼬맹이들. 사람을 두고 수군거리기나 하고 말이야.”
호기심을 풀어주기 위해 신은 보기 드물게 친절을 발휘하여 가까이 다가갔다. 아이들은 흠칫 놀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자기방어가 불가능한 존재를 건드리는 자는 즉결 처분된다고 했던가. 대충 흘려들은 두앗의 법칙을 떠올리며 허리를 굽혔다. 눈높이가 어느 정도 엇비슷하게 맞춰졌다.
“뭐가 그렇게 궁금하냐.”
다정한 목소리를 흉내 내지만 ‘진짜’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기가 막히게 사람의 인간성을 잘 파악하는 어린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고 우물쭈물했다. 신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이거랑 닮아서, 신기해서요…….”
마침내, 그중 한 명이 용기 내어 전면으로 나섰다. 신은 방향을 쫓아 시선을 옮겼다. 분명 사람 이름을 들었던 것 같은데,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석고와 모래로 빚어진 장미 꽃잎 모양의 결정체, 통칭 사막의 장미였다.
“사막의 장미네. 귀한 거니까 공놀이하면 안 된다.”
“귀한 거? 그냥 돌 아니에요? 어른들이 돈도 안 된다던데.”
“이 녀석들 낭만이 없네. 그래도 명색이 행운의 상징이었는데 말이야.”
이런 물건이 나오는 건 인가와 멀리 떨어진 유적에 인접해 있기 때문일까. 신은 낙원의 울타리 바깥을 떠올렸다. 좁디좁은 유피테르의 울타리 안에서 돈도 안 되는 돌멩이는 나름대로 위상이 높았다. 상단의 재원으로는 당연히 꽝이었지만 유독 이 돌멩이를 좋아하는 구성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진짜 장미를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황야에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장미를 구할 수 없었기에 그 대신 장미라고 이름이 붙은 결정체를 꼬박꼬박 모았다. 모은 걸 사방에 나누어 주었기에, 신도 여러 개를 실에 꿰어 낙타의 목에다 걸어주고는 했다.
이 아이들과 비슷하게 용도를 찾지 못해 ‘어디다 써요?’라고 물었던 질문에 그 사람은 ‘행운의 상징이란다.’라고 대답해 주었는데, 당연하게도 진위는 알 수 없다. 단순한 미신일 테니까. 단지, 너에게도 하나 나누어 주겠다고 말했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품고 있던 꿈이, 애정이, 오랜만에 떠올랐을 뿐이다.
“하나씩 가져가. 혹시 알아? 행운을 가져다줄지.”
별생각 없이 그렇게 내뱉자, 그들은 또다시 저들끼리 목소리를 낮춘 채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대충 들어보니, ‘모르는 사람 말은 믿으면 안 돼.’, ‘주는 걸 받으면 안 돼.’ 같은 보호자들의 경고를 그대로 옮기고 있어서 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단절된 폐쇄사회에서 자라고 있는데도 안전 교육을 확실히 시키는 모양이었다.
“손님을 곤란하게 하면 못 쓴단다. 허허, 그리고 할아버지는 자식이 없어요.”
“위칸 할아버지다!”
“봐!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또다시 재잘재잘. 순식간에 휙휙 변하는 데시벨을 피부로 느끼며 신은 아주 조금 피로해졌다. 이게 바로 기가 빨린다는 느낌인가 보다. 위칸이 아이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더라면 기력을 다 빼앗겨 넋을 반쯤 놓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청년을 잘 따르는구먼.”
“겁도 없이 들러붙던데요. 사람 무서운 줄 몰라, 이 녀석들.”
툭 내뱉으면서도 신은 노인을 슬쩍 바라보았다. 키라나 와히드에 비하면 ‘전사’라는 느낌을 주지 않지만 그와 비슷한 기운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어떤 과거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으면 산전수전 다 겪었으리라.
매사냥꾼들과 일시적으로 손을 잡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인지, 위칸은 스스럼없이 신에게로 다가왔다. 자리를 피할까, 적당히 대화에 어울려 줄까, 고민하던 그를 붙잡은 건 이어지는 한마디였다.
“그건 파사의 작품 아닌가. 유피테르의 파사미트.”
일순,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고 회로가 정지한 것만 같은 감각을 받았다. 파사. 파사미트. 그리운 이름을 생면부지인 타인에게서 듣는 건 처음이었다. 시큰둥하던 푸른 눈빛에는 순식간이 이채가 돌았다. 그는 설명을 촉구하듯 노인을 똑바로 보았다.
“흘러들어온 유민이라네. 자네와 같아.”
위칸은 길게 내려온 소매를 걷어붙였다. 팔에는 화려한 장미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제야 신은 아이들이 자신을 보고 ‘닮았다’라고 한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챘다. 그의 목에는 목을 앞뒤로 다 둘러싸고 있는 꽃과 가시덩굴 무늬가 자리하고 있었다. 확실히, 닮았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나도 흡사한 형태였다. 같은 사람의 작품이다.
“유피테르와는 가끔 거래를 했지. 같은 폐허를 썼던 적도 있었고. 그게 한 30년 전인가……. 자네는 유피테르의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부족?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파사의 안부를 물어도…….”
“죽었어요. 당신이 아는 사람들은 전부. 이젠 어디에도 없어요.”
신은 재빨리 말을 끊었다. 자세한 건 묻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다. 그의 태도에서 위칸은 어렴풋하게 유피테르의 끝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원하는 대로 화제를 끊어 주었다.
그것에 감사하면서도 그리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밀려 올라와서……. 신은 조금 다른 이야기의 서두를 던졌다. 어리광을 부리는 어린애 그 자체였다. 인지하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파사는 내가 아픈 건 싫다고 도망갔는데 강제로 붙잡아서 이걸 그려놨어요. 아무튼 제멋대로인 사람이야. 당신한테도 그랬나요?”
“청년이랑은 정반대였다네. 무척이나 멋진 꽃으로 온몸을 둘러싸고 있기에 직접 부탁했지.”
“파사가 좋아했겠다.”
“굉장히 기뻐하며 두 팔 벌려 환영한다고 하더군. 솜씨가 좋아. 30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나 선명한 걸 보렴.”
세상에 없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막의 생존자들은 저마다의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신은 위칸의 눈에서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고, 그럼에도 지금까지 살아남아 떠난 이들을 기리는 자의 모습이다.
너무나도 흔해빠져서 역사의 귀퉁이에도 실리지도 못하고 사라질 이야기를 지금 이 자리에서 주고받는다. 흐려지지 않도록, 잊지 않도록. 그들은 분명히 실재하는 존재였다고, 끊임없이 되뇐다. 신은 위칸에게서 미래의 모습을 엿보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하나 같이 어리석을 정도로 머나먼 과거에 얽매여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또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을.
“위칸이라고 하네. 부족 길잡이별의 지도자 위칸.”
위칸은 정식으로 자신의 신원을 밝혔다. 알키마드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사막의 방식이었다.
지금의 그는 알키마드의 ‘신 유피테르’였지만, 노인의 소개는 그의 시계를 과거로 돌려놓는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항이 한가득인 도시의 규칙이 아닌, 익숙한 바깥의 규칙. 신은 목덜미를 매만졌다. 개개인을 감시하는 도시의 규칙인 전자 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하 도시 두앗에서 낙원과 황야의 경계는 흐려진다.
“……상단 유피테르의 사냥꾼 신야입니다. 그냥 신이라고 불러요.”
자신의 근원임에도 실로 오랜만에 소리로 내뱉는 단어의 조합이 낯설었다. 신은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호오, 사냥꾼이었나.”
“애들도 일 인분 밥값은 해야 하는 거 알잖아요. 안타깝게도 염소 돌보는 일에는 재능이 없어서.”
“아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군.”
“납득하지 마요.”
대화는 가볍게 이어졌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 영원히 이어질 거라고 여겼던 일상, 지금은 과거에 남고 만 일상을 지나 과거로 돌아간 시계는 원위치를 찾아 현재로 돌아온다. 그리하여 이야기의 중심은 다시금 두앗으로 옮겨온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조금 어떤가.”
“어차피 지금은 나가지도 못하잖아요? 뭐, 일단은 당신들 뜻에 따르려고요. 하지만…….”
길잡이별과 유피테르는 별개의 전혀 다른 집단이다. 그들 사이에 형성된 규칙도 똑같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부족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의식은 어느 정도 같기 때문에, 신은 자신의 두루뭉술한 대답을 이해하리라고 믿으며 말을 간략하게 줄인다.
“우리는 우리의 정의로 살아가니까.”
건조한 말투는 모래 알갱이가 되어 바스러질 것 같았지만 그 속에는 부서지지 않을 의지가 담겨 있었다. 위칸은 동의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인자하게 웃을 뿐이었다.
“부디 자네가 길을 찾아가기를 기도하지.”